• 연혁
  • 철도노조
  • 아카이브
  • 1947년 대한노총 운수부연맹 창립

    1947년 1월 17일 용산 부우회관에서 대한노총 운수부연맹 창립대회를 열고 초대위원장에 오차진을 선출하여 대한노총 산하 철도노동조합의 전국조직을 결성했다.

    목차
    1. 개요
    2. 대한노총의 탄생
    3. 대한노총 운수부연맹
    4. 대한노총 철도노동조합연맹

    2. 대한노총의 탄생

    1946년 3월 10일 미군정청의 지원 아래 우익 정치 세력들이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대한노총)을 구성했다. 대한노총은 노동조합 대표가 아닌 조직폭력배들과 반공 우익 청년단체 소속 회원들을 중심으로 15개 직장 45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대회를 했다.

    대한노총의 목표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약칭 전평) 타도였다. 1946년~47년 전평이 주도하는 총파업을 파괴하고 이승만의 정치적 동원부대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대한노총 지도부들은 전진한 초대 위원장이 사회부장관에 임명되는 등 정치적 출세를 보장받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노총 총재를 맡았으며, 8월 25~26일 대의원대회에서 명칭을 대한노동총연맹으로 바꿨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우익 정치 세력들은 대한노총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동원했다. 이승만의 정책이나 노선을 지지하기 위한 대중집회·시위활동이 주요 사업이었다. 미군정청의 활동 보장을 통한 합법적인 대표성을 획득한 후 전평의 노동조합 조직과 세력을 폭력이나 테러·해고 위협으로 파괴해 나가는 방법 등으로 조직을 확장해 680개의 노동조합과 12만 명의 조합원을 갖게 되었다. 이후 내부 파벌싸움과 한국전쟁으로 한때 활동이 중지되었다가 1954년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 실시를 계기로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로 이름을 고치며 활동을 재개했다. 대통령 이승만과 집권 여당인 자유당의 기간단체로 전락, 어용 노동단체가 되어 3․15 부정선거에 협력하다가 4․19혁명과 더불어 해체되었다.

    3. 대한노총 운수부연맹

    1946년 5월 12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의 모체인 대한노총 운수부(당시 미군정청 산하 기구, 오늘날의 교통부) 경성공장지부가 창립된다. 이들은 미군정청과 대한노총의 지원으로 ‘철도 건설대’를 설치하여 서북청년단과 철도경찰, 독청 등이 합세하여 조선철도노조 조직을 파괴하고 각 지역마다 운수부연맹 지부와 분회를 설치한다. 대한노총 운수부 경성지부는 1946년 10월 13일 서울 통신구에서 경성공장(서창), 기관구, 통신구, 본국 등의 대표자 31명이 회합하여 대한노총 운수부연맹 창립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국적인 철도노동조합 조직화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1947년 1월 17일 용산 부우회관에서 대한노총 운수부연맹 창립대회를 열고 초대위원장에 오차진을 선출하여 대한노총 산하 철도노동조합의 전국조직을 결성했다.

    4. 대한노총 철도노동조합연맹

    운수부연맹은 1948년 10월 철도건설대를 다시 조직해 대전, 대구, 부산, 순천, 광주 등 지방에 200여 명에 달하는 조직폭력배 중심의 건설대원들을 파견해 철도 전국조직을 정비했다. 1949년 3월 대한노총 철도노동조합연맹으로 조직명을 바꾸고 오늘날과 같은 전국적 조직 규모의 철도노동조합연맹으로 정비했다. 이들은 권력의 비호 아래 끊임없이 계파 간 주도권 다툼을 벌여 조직 분란을 일으켰다. 자유당 정권하에서 교통부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은 ‘현업원조합’을 지지하고 공무원법을 수정하여 철도노동조합연맹을 해체하려 한다. 그러나 ‘현업원조합’은 결국 철도노동조합연맹의 요청에 의한 이승만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해 해체된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철도 현장에는 공무원법 개악을 통한 노동3권의 제한 저지 투쟁, 정부기구 개혁 또는 디젤기관차 도입에 따른 현업원 감원 반대 투쟁, 양곡 지급 배급 투쟁, 수당 폐지 반대 투쟁, 임금인상 투쟁 등 다양한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정치적 협상, 정부 청원에 의한 타협으로 종결되었고 성과물 또한 미약했다. 또한 1954년 양곡 지급 배급 투쟁은 배고픈 조합원들이 직접 시가행진 등을 전개했지만 부패 고리와 연결된 이 문제 또한 철도노동조합연맹 집행부의 미온적 대처로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4.19혁명 시기, 어용화된 철도노동조합연맹을 대체하려는 ‘한국철도기관사노조’ 결성과 준법투쟁 전개 등 노조 민주화의 흐름이 만들어졌으나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되어 철도노동조합연맹도 강제 해체되기에 이른다.

    한편 현재 철도노조는 철도노조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2005년부터 기존 대한노총 운수부연맹 창립일인 1월 18일을 대신해 조선철도노동조합이 창립된 11월 2일로 노조 창립일을 새롭게 정해 이를 기념하고 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