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의 집산지가 된 군산항, 화물 수송을 위해 개통된 군산선, 일제의 자본 축적을 위해 설립된 공장들은 군산 지역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기존 농민층의 이탈을 촉진하고 새로운 노동 계층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군산역에서 처리한 주된 화물은 쌀, 가마니, 목재, 석기류 등이었다. 이중 쌀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어 군산역에 도착한 쌀 운송 관련 새로운 노동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새롭게 형성된 운송 노동 시장의 노동자들은 이윤 확보를 위한 저렴한 노동자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처우는 같은 하역 작업에 종사하는 일본인에 비해 열악했고, 임금 차별이 존재했다. 군산철도노동회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아래에서 창립되었다. 철도 하역 운송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활동의 중요 목표였으니 일본인 자본가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1925년 일본인 자본가들은 임금을 인하하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이 문제로 철도 노동자들은 파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군산철도노동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회원들을 지도하여 연대 파업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파업 시작 하루 만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켜 임금 인하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1925년 군산철도노동회 파업
1925년 12월 25일 군산철도노동회 회원들은 일본인 운송업자들의 임금 인하에 반대하며 그 해결을 요구하는 하차작업 거부 파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임금인상을 쟁취하고 복잡한 임금체계를 개선했으며 균등한 분배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