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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부당전출 저지 수색지구 안전 운행 투쟁

    철도노조의 2.25 파업 이후 노조 탄압과 현장 통제를 위한 철도청의 징계가 지속됐다. 노조 경의일산역연합지부 김남희 여성부장에 대해 ‘수색역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민주노동당 유인물을 부착했다’는 이유를 들어 ‘감봉 1개월과 전출’이라는 징계 조치를 내리자 해당 지부의 부당징계 철회 투쟁이 시작됐다. 이후 수색지구 확대간부연석회의가 열려 4개 지부(경의일산선역연합지부·서울기관차승무지부·서울차량지부·수색차량지부)가 수색지구공동대책위원회(이하 수색공대위)를 구성하고 부당징계 철회 투쟁에 함께할 것을 결정했다. 수색공대위는 이후 수색역장실 집회와 천막농성, 소식지 발행 등의 활동을 진행했으며 철도청과의 교섭을 병행했다. 그러나 사측은 사과 및 징계 철회 거부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수색공대위는 4개 지부 조합원 총회와 간담회를 통해 12월 5일부터 부당징계가 철회될 때까지 안전 운행 투쟁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12월 5일부터 합의에 이른 7일 15시까지 수색지구에서는 제반 작업 규정에 따라 ‘비승비강 안하기, 입환 시 안전속도 유지하기, 열차 운행 시 인접 선로 입환 안하기, 제한속도 지키기, 규정 검수, 안전 검수’ 등의 안전 운행 투쟁을 전개했다. 안전 운행 투쟁으로 서울역과 수색역의 열차 도착과 출발 지연이 속출했다. 이틀째인 6일의 경우 30분 이상 늦게 출발하고 1시간 이상 늦게 도착하는 열차가 발생하는 등 열차 운행 장애가 커졌다. 전면파업에 맞먹는 효과였다. 이에 7일 열린 교섭에서 철도청과 ‘부당징계 사과와 3개월 이내 희망 소속 전보 조치’를 합의하고 안전 운행 투쟁을 마무리했다. 기존 직종, 지부별로 진행했던 준법투쟁을 넘어 직종이 함께 하는 지구 단위의 공동투쟁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수색지구 안전 운행 투쟁은 이후 철도노조 전체 조합원 준법투쟁을 위한 주요한 사례로 남게 됐다.

    목차
    1. 개요
    2. 배경
    3. 투쟁 경과
    4. 결과와 의미

    2. 배경

    철도노조의 2.25 파업 이후 철도청의 노조 탄압과 현장 통제를 위한 징계가 지속됐다. 그 결과 노조 활동으로 인해 집행부를 중심으로 25명의 해고자가 발생했고, 186명이 고소·고발되어 100여 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78억 원의 손해배상과 조합원 92명에 대한 가압류 청구가 진행됐다. ‘4.30 고소고발, 가압류, 징계 최소화 노사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것이다. 사측은 노조 활동 탄압과 통제를 강화했다.

    한편 철도청의 직종별 구조조정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었는데 운전분야 ‘PP 일인승무 시험운행 계획’, 전기분야 ‘외주화 계획’, 운수분야 ‘정원 재조정 계획’에 이어 ‘병점 전동차기지 자회사 설립 계획’과 ‘수도권 전동차 1시간 연장 운행 계획’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981명에 대한 정원 감축이 진행됐다.

    철도노조는 2.25 파업 복귀 후 철도청 현장 탄압 저지와 2.27 합의 이행을 위한 현장 투쟁을 집회, 단식, 농성 형태로 2002년 내내 지속했다. 여기에 현장 투쟁의 유력한 방식으로 안전 운행 투쟁, 즉 ‘준법투쟁’이 파업 이후 본격화됐다. 수색지구 안전 운행 투쟁 역시 철도청이 징계 사유를 만들어내 ‘징계를 위한 징계’를 진행하자 철도청의 노조 탄압과 현장 통제, 구조조정 공세에 대한 조합원들의 공분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진행됐다. 여기에 현장 간부들의 의식적 노력과 조합원 연대를 통해 직종을 넘어 지구 단위 투쟁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3. 투쟁 경과

    1) 경의선 김남희 여성부장 징계(2002.9.24~)

    2002년 9월 24일 현장 순회를 하던 수색역장이 경의일산선역연합지부 김남희 여성부장이 근무하던 장소를 방문했는데, 여성부장이 역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민주노동당 ‘당신은 비정규직입니다’라는 역에 유인물을 붙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추진했다. 당시 소속지부의 지부장 선출과 수색역으로의 발령 시기가 맞물려 초기 대응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지부장이 수색역장과 수 차례 면담을 진행했으나 사측은 징계와 발령 철회를 완강히 거부했다.

    2) 김남희 여성부장 부당징계 경의일산선지부 투쟁(2002.11.2.~11.14)

    11월 2일 김남희 여성부장에 대한 징계위원회 개최됐고, 11월 8일 1개월 감봉과 전출을 결정했다. 이에 11월 12일 경의일산선지부 임원회의에서 부당징계 철회 투쟁을 결의했다.

    3) 수색지구 공대위 구성 및 집회와 농성투쟁(11.15~11.28)

    • 수색지구 확대간부연석회의가 열려 부당징계 노조 탄압 수색지구 공대위 결성 논의를 진행했고, 회의 결과 수색지구(경의일산선역연합지부·서울기관차승무지부·서울차량지부·수색차량지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수색공대위)가 만들어졌다. 상임대책위원장으로 김상로 지부장이 선출됐다. 집행위원은 나머지 3개 지부장과 서지본 조직2국장, 운수국장으로 구성했다.

    • 수색역장실 앞에서 수색공대위 주최로 항의집회를 개최했는데,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여 부당징계 철회를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서 김상노 경의일산선지부장이 삭발을 단행했다.

    • 수색역장실 앞에서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주최의 결의대회가 개최됐고 이날 김남희 여성부장은 태평역으로 발령이 났다.

    • 수색지구 총력결의대회가 연속적으로 개최됐고, 수색역장실 앞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24시간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한편 수색대책위는 회의를 통해 ‘(1) 수색역장 공개 사과 (2) 노사협의에 의한 재배치 (3) 징계요구자 탄원서 제출’을 확정했다.

    • 경의일산선역연합지부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고 김남희 여성부장 부당징계에 대한 천막농성 투쟁과 투쟁기금 모금을 결의했다.

    • 수색지구 투쟁속보 l호가 발간됐다.

    • 수색지구 투쟁속보 2호가 발간됐다.

    • 철도청의 소장 정기인사가 진행되어 징계를 감행한 수색역장이 제천조차장역으로 발령되고 서울열차 소장이 수색역장으로 부임했다.

    • 인사발령자인 서울역장 항의 방문 투쟁을 진행했다.

    • 철도청과 1차 교섭을 진행했으나 ‘인사발령자 1년 전보 제한’ 이유로 김남희 여성부장의 즉시 복귀에 대해 거부 입장을 고수했다.

    4) 수색지구 안전운행실천투쟁 (2002.11.29~12.7)

    • 수색지구 확대간부회의 개최가 열려 12월 2~4일 수색지구 지부별 조합원 총회를 개최해 12월 5일 ‘안전 운행 집중실천’ 투쟁을 결의했다. 또한 안전 운행 투쟁을 위한 전술팀을 지부별 1인씩으로 구성해 상황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상황실은 안전 운행 집중실천 투쟁 중 관리자의 방해 등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일을 하기로 했다.

    • 수색지구 전술팀 회의를 진행해 각 지부 안전 운행 투쟁지침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12월 5일부터 중식 공동집회를 개최하고 지부별 지침과 타 소속에 알릴 선전물·소책자를 발간하며 매일 진행되는 09시 30분 집회에 조합원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다.

      • 철도청과 2차 교섭을 진행했으나 입장 차만 확인했다.

    • 지부별 총회와 간담회(경의일산선지부 총회, 서울차량지부 대의원·상집 연석회의, 서울기관차지부 전 조합원 간담회, 수색차량지부 임원회의)가 개최되어 교섭 상황과 투쟁계획을 공유, 결의했다.

    • 철도청과 3차 교섭을 진행했으나 원소속 복귀 요구를 거부해 교섭이 결렬됐다.

    • 안전 운행 집중실천 1일차 투쟁이 12시~18시 6시간 동안 진행됐고 수색지구 투쟁속보 3호가 발간됐다.

    • 안전 운행 집중실천 2일차 투쟁이 12시~18시 6시간 동안 진행됐고, 수색지구 속보 4호가 발간됐다. 이날 17시 재개된 협상에서 철도청은 탄원서 및 김남희 부장 원소속 복귀에 대한 불가 입장을 재차 알렸고 수색공대위는 회의를 개최해 3일차 투쟁 시간을 13시 ~19시로 조정하기로 했다.

    • 안전 운행 집중실천 3일차 투쟁이 13시~15시 10분까지 진행됐다. 12시 30분부터 협상이 진행되어 15시 타결되었고 15시 10분을 기해 안전 운행 집중실천 투쟁이 종결됐다. 노사 합의 내용은 “서울지역관리역장은 서울지역관리역에서 노사갈등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김남희 씨 징계에 관한 소청위에 수색역에서 탄원서를 제출한다. 김남희 씨는 3개월 이내 본인 희망소속으로 전보 조치한다. 향후 수색역 노사는 철도발전을 위하여 적극 노력한다” 였다.

    5) 수색공대위 투쟁 마무리 이후(2002.12.8.~)

    • 수색지구 공동문화제가 수색역 호프 그라제이에서 개최됐다.

    • 수색지구 승리 속보가 발간됐다.

    • 수색지구 확대간부회의가 열려 수색지구협의회 결성을 결정해 공동대표를 4개 지부장들이 맡고, 집행위원장은 김상노 경일선지부장이, 최고 결정기구는 수색지구 확대간부회의로 정했다. 이후 사업으로 수색지구 안전 운행 연구팀 구성과 함께 12월 26일 철도노조의 전 조직적 안전 운행 투쟁 결의를 위해 본 조합에 제안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 수색지구 안전 운행 전술연구팀이 구성되었다. 2003년 2월까지 수색지구협의회 신문이 8호까지 발간됐다.

    4. 결과와 의미

    경의일산역연합지부 김남희 여성부장에게 가해진 부당징계와 전출에 대해 수색공대위는 ‘철도청의 계획적인 부당노동행위이자 노조 탄압을 위한 현장 통제 시도’라 규정했다. 어용노조 시절 철도청이 민주파 활동가들을 탄압할 때 활용했던 ‘보복성 표적 징계와 무연고지 전출’이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2.25 파업 이후 고소고발과 무차별 징계로 인한 대규모의 해고자 발생과 조합비 가압류에 이어 직종별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당장의 파업이 용이하지 않았던 조건이었지만, 철도노조와 현장 간부들은 철도청의 공세에 맞선 현장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한편 3일간의 수색지구에 한정한 안전 운행 투쟁만으로 열차 지연 사태가 속출한 것은 그동안 철도청이 제한된 선로에 무리하게 수용량 이상의 차량을 투입하고 차량 증가에 반비례하여 인원 감축을 진행한 구조조정 결과에 기인한 것이며 그동안의 비정상적인 작업 여건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다.

    안전운행 투쟁의 경우 파업 이전 특정 직종의 지부들의 사례(전동차 출입문 개폐시간 지키기, 중·석식 시간 지키기, 규정 검수하기, 규정 입환하기 등)들이 있었는데 투쟁의 파괴력과 파급력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특정 직종과 지부만의 투쟁을 넘어 지구단위의 안전 운행 투쟁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수색지구의 4개 직종 지부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 기획과 실천을 통해 직종의 벽을 넘어서는 현장 조합원들의 결의와 공동실천을 끌어내 파업과 맞먹는 열차 지연 사태가 발생했고, 마침내 철도청의 ‘사과와 징계 철회’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2002년 수색공대위 안전 운행 투쟁은 철도노조 전 조합원이 함께하는 준법투쟁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모범적인 투쟁의 사례로 남게 됐다. 이후 철도노조 투쟁의 주요한 방식으로 하나로 자리잡게 됐다.

    참고자료

    철도노조 2002년 사업보고

    수색지구 안전운행실천투쟁보고서, 수색지구안전운행실천연구팀, 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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