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작창 민영화 반대 투쟁은 2년간에 걸친 투쟁 끝에 1969년 11월 14일 항의 집회에서 인수 추진 기업인 한국기계(주)의 확약을 받아냄으로써 마침내 민영화 철회로 마무리되었다.
인천공작창 철도노동자들과 철도노조는 ‘민영화 반대 6개 요구사항’을 정했다. 요구사항은 ‘서울지구 보수 차량의 폭주로 인해 인천공작창을 보수창으로 전용해야 함, 철도조직의 지도체계가 교란됨, 외주화로 인해 소요되는 정부 예산이 연간 4억 이상 손실이 발생함, 독점적 운영으로 인한 숙련된 인력의 수급 차질이 빚어짐, 신공작창 건설에 소요되는 건설비가 50억 원에 달함,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신진자동차와 한국기계의 반노동자적인 경영방식’ 등이었다.
한편 인천공작창 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은 당시 철도노조의 투쟁이라기보다는 인천공작창에 근무하고 있는 800여 조합원들의 투쟁이었다. 이미 1968년 11월부터 자발적 항의 집회를 통해 투쟁을 시작했지만 철도노조는 해를 넘긴 4월에야 대책기구를 만들었고 투쟁도 전 조직 차원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인천공작창의 조합원들만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투쟁 대상이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던 철도청이 아니라 불하를 받으려 하는 한국기계(주)였다. 결국 1980년대 초 기차 생산은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등 민간기업으로 이관되었으며 1983년 11월 10일 인천공작창은 대전정비창에 흡수 통합되어 폐청되었고, 근무하던 조합원들은 대부분 대전공작창으로 전보되었다.
참고자료
- 중앙일보 기사, 1969년 5월 24일
- 철노 50년사, 철도노조
- ‘인천의 오늘과 내일’, 블로그
-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단체사건 편찬을 위한 기초연구조사보고서(한국전쟁 이후~196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